‘Occupy Wallstreet(월가를 점령하라)!’
금융가의 탐욕에 반기를 든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위는 부자들의 탐욕과 높은 실업률에 항의하며 미국판 촛불시위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금융가의 과도한 탐욕이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고 빈곤층의 상대적 빈곤감을 더욱 강화시켰다는 게 이들이 시위에 나선 이유다. 도덕적 해이에 빠진 금융계와 통제력을 잃은 정부에 대한 경고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경제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 기업의 목표가 이윤추구라고 가르친 서양의 경제 교과서는 이제 기업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할 때인 것 같다. 이윤만 추구한 결과가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는 게 이번 사건이 던진 교훈이다.
금융업은 경제 주체들을 위해 자본을 연결해주고 자본을 활성화해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멋진 은행 건물과 인테리어, 신사복과 정장으로 빼입은 직원들의 웃음과 매너와 같은 겉모습의 이면에는 자본에 대한 탐욕과 이윤에 대한 무차별적인 추구가 숨겨져 있었다.
그동안 미국 금융계의 중심 월가는 그럴 듯하게 포장해 자신들의 모습을 위장했지만 속으로는 이윤과 탐욕에 물들어 있었다는 게 시위대의 생각인 것 같다. 양(羊) 머리를 걸어놓고 실제로는 개고기를 판다는 뜻의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는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이나 실제로는 형편없다는 뜻으로 겉과 속이 다를 때 자주 사용된다.
양두구육은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 말이다. 어떤 상품이 포장이나 사진은 훌륭해 보이지만 내용물이 형편없는 제품이거나 겉은 멀쩡한 사람이 실제로 정신적 문제와 인성의 결함을 가지고 있다면 모두 양두구육의 모습이다. <논어(論語)>에 보면 아름다운 그림은 흰 바탕이 있은 후에 그려야 한다는 공자의 말이 있다. ‘회사후소(繪事後素)!’ 그림을 아무리 예쁘게 그려도 흰 바탕의 기본이 있어야 진정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뜻이다. 바탕이 깨끗하지 않으면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듯이 인간도 기본이 돼 있지 않다면 어떤 예의와 교양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밖에 양머리가 걸려 있으면 실제 파는 것도 양고기여야 한다. 겉은 돈(金)이 잘 섞이도록(融) 도와준다는 뜻의 ‘금융(金融)’이라고 써놓고 실제는 이익과 탐욕만 추구한다면 돈의 야만인이란 뜻의 ‘금융(金戎)’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계를 돌아보면 키코나 엔화대출 등으로 피해를 본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번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도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금융기관의 실적 올리기를 위한 무분별한 캠페인, 달콤한 말과 회유, 금융 감독기관의 도덕적 해이, 금융자산가들의 음성 결탁과 사치 등이 많은 기업들과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렸다는 혐의를 벗을 수 없다.
동양의 상도(商道)는 이윤을 추구하되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귀가 인간의 모든 욕망의 대상이지만 그것이 정당한 방법(道)을 통하지 않는다면 거부한다’는 공자의 선언은 몇 천 년간 내려온 아시아인들의 기본 가치였다. 이번 월가의 시위를 보면서 이제 양두구육의 혐의를 벗고 양두양육(羊頭羊肉)의 정의가 실천되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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